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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키미
작성일 2020-06-04 (목)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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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조상의 묘를 개장하여 납골묘에 모시면서 느끼는 소회
   제목 : 선대 조상의 묘를 개장하여 납골묘에 모시면서 느끼는 소회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대에는 후손들이 선조 봉양하기를 중요시하지 않고 등한히 하려하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상숭배를 회피하려 하고, 조상보다 자신의 자녀만을 생각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원에서 생각 해 볼 때 우리가 조상 숭배의 마지막 세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젊은 사람들이 쉽게 따르고 행동 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만 연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고로, 묘소도 접근하기 쉽고, 또 관리하기 쉽도록 해야 하고, 모양도 공원 같이 아름다운 모양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며, 제례방법도 우리의 생활에 맞게 쉽고 편하게 하지 않으면 조상을 숭배하기란 더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세태의 흐름에 발 맞추어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후손이 따라올 수 없는 처지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현대감각에 맞게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은 제례방법의 개선이며(날자, 시간, 제례방식~지방, 축문, 홀기, 상차림) 장례관계, 묘소관계 등 등 인데 하루 한 날에 바꿀 수 없는 일이나 가족단위로 가능한 것부터 서서히 개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과거와 같이 조상 수 십 기의 묘소를 관리 한다는 것은 자손들에게 큰 부담으로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왔고 앞으로 더욱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를 생각해 오던 중 조양군 문중에서는 지난
3월 14~15일 조양군 후손 6대의 묘(15세부터 20세까지) 11개소의 묘를 개장하여 화장을 한 후 한곳에 합설 묘(6대)로 모시면서 느낀 점이 많아 그 당시의 소회를 소개하려고 한다.

15세 “찬” 선조님 (조양군의 아들로 가선대부 용양위 대호군)의 묘소를 개장 할 때 깜짝 놀란 것은 봉분자리를 파보니 관이 없어 한참을 헤매며 별 생각을 하며 포기하기 직전 혹시나 하여 봉분 밖을 파보니 관을 찾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긴 한숨을 내 쉴 수 있었고,
그 옆에 배위 의 시신도 약 2m이상 떨어진 봉분 밖을 파보니 그곳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관과 유골의 상태도 찬 선조님과 동일한 상태로 500여년 된 묘소라고 보기 쉽지 않은 처지 였다. 이와 같이 두 내외분의 관을 2m 이상 띄워 장례를 모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 하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첫째,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봉분의 크기가 줄어서 인지,
둘째, 도굴을 방지하기 위하여 봉분 밖 양쪽에 두 분의 시신을 각각 모셨는지 알 수 없는 일이며,
셋째, 두 개의 봉분이 약500여 년 경과 하면서 봉분이 유실되어 하나로 되었는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 처지였다.

매장 방식은 매장된 관은 깊이가 약 2.5m 정도로 깊게 매설 되었으며,
외관은 두께가 약 20 cm 이상으로 된 석회로 만들었으며,
그 안에 목재로 만든 내관은 두께가 약 3치(9cm) 정도가 되는 나무로 만들어 이중 관을 사용하였으며 , 두께 9cm 정도의 통판으로 덮인 목관의 뚜껑을 열고 보니 마치 이불을 덮은 모양의 시신이 보여 졌고 자세히 살펴보니 다 삭은 수의가 여러 벌 입혀 있었는데 그 당시 관직에 머물 때 착용했던 관복을 모두 입혀 매장 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불 같은 수의를 건드리자 삭아서 부스러졌고 자세히 보니 여러 벌의 수의가 입혀진 상태였으며 수의를 헤쳐 보니 유골이 나타나는데 두개골의 모양도 완벽하였고 아래 앞 치아 1개가 빠진 상태로 매장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유골도 온전하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이하의 여러 묘소도 관의 매설 깊이는 2.5,m 정도이고 관은 이중 관으로 외부는 석회로 만들고 내부는 목관으로 만들었으며 하단의 19세 “득생”선조님의 묘소는 이중으로 된 관속에 물이차여 있어 두개골이 반 정도 물이 차여 있었다.

이상의 여러 개의 묘소를 개장하면서 느낀 점은 관의 보존 상태가 좋은 묘소는 유골도 보존이 잘 되어 있었으며 목관이 부식된 묘소는 유골도 많이 남지 않은 상태 였고 같은 능선이지만 하단의 묘는 물이 들어 있는  묘소가 있었다.

이상과 같이 시신 매장 방식이 이중 관을 사용했고 깊게 매장한 것을 보더라도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들어보지 못한 일 이었으며 우리가문의 선조님들은 지위나 경제적인 상황이 상당한 처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으며 그 후손으로서 선조님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능선 최 하단에 19세“득생” 선조님의 묘소 바로 밑에 쌍분으로 위와 동일한 모양으로 된 있는 묘소가 있는데 이 묘소는 무연고 묘라 하여 우리가 관리를 하고 있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묘 인데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의 선대 20세 “석” 선조님의 내외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소는 능선의 최 하단에 위치해 있어 상석의 자리가 붕괴되어 없어 젖고 또 비문도 없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다.

19세 “득생” 선조님의 아들이 3분인데
1) 장자는 : “철“이며 천안문중의 선조로 족보에 기록 되어 있으나 배위가 없고 묘소도 없어 그 후손이 있다는 자체가 의문점이 있다.
2) 차자는 ”익“인데 이분은 서산으로 이주하여 그 후손이 정확하게 묘소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의문점이 없고,
3) 삼자는 : ”석“인데 배위 는 문화 유 씨 이고 족보상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후손도 묘소도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묘소가 석 내외분의 묘소가 틀림없는데 여기서 계대 연계가 잘못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세 “득생” 선조님의 셋째아들 석의 묘로 보는 것이 타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19세 ”득생”선조의 묘소 바로 밑에 묘가 있어 그 후손으로 보는 것도 타당하고,
② 모양도 위 묘와 동일하게 쌍분으로 되어 있고 ,
③ 위치가 능선의 최 하단으로 좋은 장소도 아니고  ,
④ 그런 장소에 타인이 이 자리에 묘를 쓸 이유가 없다.
⑤ 시간이 경과되면서 상석과 비문이 유실된 자리도 보여 지며,
⑥ 기회가 되는대로 장비를 동원하여 주변에 파묻혀 있는지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4월 24일 은 현재 우리 양무공 문중에서 모시는 묘지 중 최고 윗대의 선조님이신 12세 “맹손” (추증, 순충보조공신 숭정대부 의정부 우찬성, 보산군) 조부님이 내외분의 묘소가 약 550년이 지난 묘인데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 천안으로 이장을 하면서 기대를 했던 것은 윗 선대를 밝히는 유장품이 있을까 하여 기대를 하였으나 조부님 묘소에서 유골 일부분과 놋쇠로 만든 수저 1개만 찾을 수 있었고 조모님의 묘소가 위에 위치해 있지만 유골이 다 분해된 처지 이었고,
그 당시 “맹손”선조님의 처지가 상당히 어려운 처지라서 그런지 아버지(용권, 11세 추증 숭정대부 의정부 우찬성 보국대장군)는 고성으로 유배를 가셨고 아들인 자경은 한참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에 장례 절차나 방법도 정상적으로 치루지 못할 처지 이었을 것으로 우리는 유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과욕을 부렸던 듯 생각이 든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해가면서 심사숙고하며 생각할 일들이 많다.
1. 최초의 족보가 너무나 오류가 많은 족보였기에 우리가 최근 어려운 과정을 격은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노력해야 할 과제는
첫째, “현필” 시조부터 “현우” 사이의 계대를 찾아야 하는데 2세부터 9세 까지가 바르게 연계가 되었는지 으아스런 면이 있어 이를 찾는데 노력을 해야 하며.
둘째, 흥양오씨 문중과 우리와의 관계는 “(완) - 현우 – 중권/용권” 까지 이어져 오다가 “용권” 선조께서 이차 왕자의 난에 가담하여 실패하여 역적에 몰려 귀양을 갈 즈음 그 형인지 아우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중권이라는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흥양오씨로 분파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여러 가지 확인이 되고 있으며 (오용권(吳用權)은 고려말에는 대장군(大將軍)이었고 조선초에는 상장군 임)
✿. 흥양오씨 세계도중 일부분만 보면 “완-현우-중권/용권”으로 되어 있으나 “완 과 현우”는 부자 간 이지만 약 100년 이상의 년대 차이가 있어 계대 연결에 의문점이 있고,
✿. 우리는 “현우- 용권-맹손–자경”으로 이어진 상태까지만 밝혀진 상태이다.
2. 어떤 가문을 보면 문중에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의욕도 강해서 묘역을  성역화 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추후 관리의 어려움, 관리비용 발생의 문제, 먼 후일 후손들에게 어려움을 남기는 처사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유념해야 할 일이다.
3. 과거처럼 조상봉양을 제일의 과제로 삼던 그런 시대는 먼 옛날의 일이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태에 맞추어 후손들이 행동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하며 묘 관리나 조상숭배의 방향이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후손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4. 또 한 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안이 있다.
흔히들 현재도 묘소의 비문을 좋은 한글이 있음에도 구지 한자를 사용하려고 하는 구시대적인 사람이 있는데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읽지도 못하는 그런 한자를 써서 후손에게 왜 어려움을 주려 하는지 우리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5. 나이든 사람들 본위로 고정된 관념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1)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조상 숭배를 등한히 하려하는 이유는 자녀의 수도 적으며, 먼 옛날의 일에 힘들게 얽매이려 하지 않으며, 묘소 관리에 어려움도 많아 회피하려 하며, 쉽고 편하게 살아가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그러므로 제사 때 읽는 축문이나 지방도 한글로 알기 쉽게 풀어서 쓰고,
3) 상차림도 과거의 따름을 꼭 찾아야 하는 시대는 다 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4) 앞으로의 사람들이 좀 더 쉽게 행동하고 처신할 방법을 우리가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임을 알고 그런 노력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이다.

화일 첨부 및 본문 직접 올리기 두가지를 함께 했습니다.
사진은 추후를 관망하면서 결정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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